책 속으로
부둣가를 떠나면서 스스로 과제를 만들었다. 나는 이 여성들의 이름을 찾기로 했다. 이들이 무슨 일을 했기에 아름다운 1940년대 에니악 흑백 사진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아갈 예정이었다.
- 프롤로그
그 후 며칠 동안 케이는 직접 본 기계를 궁금해했다. 프로젝트 X가 완성되면 어떤 형태이고 누가 사용하게 될까? 사용자는 반드시 기술자여야 할까? 꼭 남성이어야 할까?
- p148
11월 중순의 어느 날 허먼이 갑자기 여섯 여성의 사무실 문 앞에 나타났다. 표정이 심각했다. 명령을 내리려는 게 분명했다. 그는 “날 따라오게. 에니악 방에 제군들이 필요해.”라고 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탄도 궤도 업무를 재개할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맡아야 할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케이 일행은 상기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이 지금껏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에니악 방으로부터의 추방이 끝났다. 이들은 환한 미소와 함께 허먼을 따라나섰다.
- p217
우리는 서로가 하는 일에서 결점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상대가 결점을 찾았을 때는 화를 내기보다 기뻐했죠. 프로그램에 오류가 남지 않는다는 뜻이었으니까요.
- p237
베티와 진은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미 자신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여러 차례 확인해온 터였다.
“좋아요. 그럼 여러분이 시연을 맡으세요.” 허먼은 지시했다.
이들은 바로 다음 날부터 에니악에 프로그램을 넣기 시작했다.
아파트를 떠나는 베티와 진은 쌀쌀한 2월의 공기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너무 신났어요. 꼭 꿈이 실현되는 것 같았죠.”
- p249
진과 베티는 행사에서 배타주의를 느꼈다. 진은 남녀가 함께한 작업인데 발표가 ‘남성들의 쇼’가 되었다고 느꼈고 베티도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날 소개되지 않은 것을 두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예상했던 바예요. 당시에는 여성이 전혀 인정받지 못했거든요. 그건 그냥 흔한 일이었어요.”
- p270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만 받을 수 있는 훈련을 받았고, 소수의 인원만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여섯 여성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p271
에니악은 유용한 작업을 폭넓게 수행함으로써 그 가치를 증명했다. 에니악을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간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전자식 범용 컴퓨터로 보았던 존 모클리의 구상이 실현되고 있었다. 말린이 웃으며 말했다. “이 기계로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몹시 으스댔었죠.”
이 과정에서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이 탄생했다. 문제를 가진 사람과 컴퓨터를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여섯 여성은 현대 컴퓨터 분야 최초의 직업 프로그래머였다.
- p289
에니악을 본래의 강력한 ‘직접 프로그래밍’ 방식으로 사용해본 사람은 소수였다. 오로지 이 작업을 위해 고용된 건 딱 여섯 사람이었다.
베티 홀버턴(결혼 전 성은 스나이더)
진 바르틱(결혼 전 성은 제닝스)
캐슬린 모클리 안토넬리(결혼 전 성은 맥널티)
루스 테이텔바움(결혼 전 성은 릭터먼)
말린 멜처(결혼 전 성은 웨스코프)
프랜시스 스펜스(결혼 전 성은 빌라스)
에니악 6인뿐이었다.
-p327
추천사
여성 개발자로서 수없이 마주했던 고민이 이 책의 여성 개발자들이 ‘사라진' 배경과 맞닿아 있다. 놀라운 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 근본을 들여다봐야 해결 방법이 나온다. 이 책은 굳이 여성, 남성을 나누어 개발자를 인식하는 문제의 근본을 마주하고, 그 해결 방법을 다양한 각도로 찾아볼 수 있는 시작점이다.
_이해민, 오픈서베이 CPO, 전 구글 시니어 프로덕트 매니저
직업인 프로그래머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왔으나 여성 프로그래머가 희귀하다는 프레임은 여전하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대학생 시절부터 프로그래머들의 관리자가 된 지금까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코드로 그리고 시스템으로 풀어내는 일을 즐겼고 또 잘해왔다. ‘여성 프로그래머치고는’이 아니라 온전한 한 명의 프로그래머로서.
에니악의 역사에서 묵묵히, 하지만 치열하게 소프트웨어를 이끈 6인의 여성 프로그래머들을 만나고 내가 왜 이 직업을 사랑하는지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들의 존재가 든든했고, 연대의 힘을 이어갈 용기를 얻었다.
_박미정, 前 무신사 개발 실장
전쟁, 컴퓨터, 여성. 무엇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서로를 밀어주고 이끌어주던 에니악 6인. 역사가 잊고자 했고, 잊힐뻔한 영웅들을 기억하고 책으로 담아낸 이들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드러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노력하는 자' 그리고 '그들의 노력과 진심을 알아주는 자'에게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 프로그래밍의 원천과 역사를 되돌아보며 진정한 프로그래밍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
_서지연(치즈), 세상을 즐겁게 만드는 게 좋은 개발자
2000년대의 여성 개발자였던 저는 1940년대부터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했던 선배 개발자분들 덕분에 여성으로서 눈길은 좀 받았을지언정 존재를 부정당하는 힘든 길은 걷지 않았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저는 여러 회의실과 콘퍼런스장, 온라인 줌 미팅에서 흔치는 않아도 자연스럽게 개발자 동료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디에 가서 AI 전문가라고 저를 소개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묵묵히 길을 개척해주었던 분들의 삶을 잠깐이라도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선배 개발자였던 에니악 6인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_주한나, 『챗GPT 개발자 핸드북』 저자
이 책은 컴퓨터 역사와 여성 역사의 교차점에서 사라져 버린 여성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외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개발자들의 존재를 세상이 재조명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특히 '애니악 6인'이라 불리는 이 초기 프로그래머들이 남성의 영역이었던 기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거대하고 위압적인 애니악 앞에서 혁신적인 기여를 한 사실은 놀랍습니다. 노력, 독창성, 창의력, 기여 정신으로 당시 20초라는 짧은 순간에도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이들의 개발 과정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들은 역사적인 업적을 달성한 인물로서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세상에 이름이 밝혀졌고, 우리에게는 도전을 부여하며 컴퓨팅과 프로그래밍 분야에 영감을 줍니다. 여성 개발자 커리어 발전을 위한 글로벌 비영리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제가 보기에도 여전히 IT 여성들이 기술 분야에 진입하고 성장하고 성공하기 어려운 부분이 꽤 많습니다. 여전히 끊임없는 혁신과 경쟁이 일어나는 전장에서 진정한 기술 리더십을 추구하는 여성 개발자들이 있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이 책은 또 다른 케이, 프랜, 진, 루스, 말린, 베티에게 끈기와 팀워크 정신, 진정한 기여를 통해 사라지지 않을 성장과 가능성을 확신시켜 줄 것입니다.
_최가인, 뤼이드 DevRel 매니저
개발자라면 더 재밌을 테고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논픽션 책이다.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차별이 있었음에도 개발자로서 능력을 펼친 6인을 응원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특히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쾌감을 느꼈다.
유성실, 코멘토 프론트엔드 파트 리더, Girls in Tech Korea 운영진
챗GPT 같은 AI가 범람하는 요즘, 숨겨진 에니악 6인 여성의 이야기를 파헤치면서 오히려 그녀들의 끈기와 노력, 창조성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협력하는 ‘인간다움’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_김호영, 고등과학원 거대수치계산연구센터 슈퍼컴퓨터 관리자
루프와 IF 문을 누가 처음으로 생각해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디버깅에 중단점이 없었다면 프로그램 실행 직전 기도는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이 책은 이 모든 개념을 '개발'한 천재 개발자들의 이야기다!
_정지영, 독서광 개발자
모두가 캐시 클라이먼에게 그녀가 찾던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행히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클라이먼은 탐사 저널리스트의 본능으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를 프로그래밍하기 위해 성차별, 복잡한 궤도 방정식, 진공관 파열에 맞서 싸운 놀라운 여성 6인의 이야기를 추적해나간다. 초기 컴퓨팅의 역사와 현대 프로그래밍을 가능하게 한 여성들의 삶을 이 책에 조화롭게 엮어냈다. 『사라진 개발자들』은 깊은 영감을 주는 책으로, 기술 분야와 그 안에서 여성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녔다.
_나탈리아 홀트,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로켓 걸스』 저자
클라이먼은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소설가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 책은 우리에게 뜻밖의 영감을 선사한다. 『히든 피겨스』와 『유리우주』의 팬이라면 꼭 읽어보길.
_퍼블리셔스 위클리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