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나이트>는 배트맨의 일대기다. 주인공 브루스 웨인은 1편 <배트맨 비긴즈>에서 20대 중반 정도로 처음 등장했다. 프린스턴 대학을 중퇴하고 히말라야에서 닌자 수업을 받고 돌아올 때까지 7년이 걸린다. 본격적으로 배트맨으로 나선 건 30대 초반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 나이대의 사내들이 으레 그렇듯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의지와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2편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조커에게 일격을 당한다. 조커의 협박에 굴복한 시민들은 배트맨을 내다 버린다. 대중은 희망을 주려던 사람을 그렇게 이용한다. 배트맨은 사랑마저 잃는다. 브루스 웨인은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때 나이가 대략 30대 중반이다.
그 뒤 대략 8년이 지난 이야기가 3편 <다크나이트 라이즈>다. 이제 브루스 웨인의 나이는 40대 중반쯤 된다. 40대의 브루스 웨인은 차갑고 무뚝뚝한 중년 아저씨로 전락해 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불혹의 브루스 웨인이 미혹되는 중년의 성장기다.
브루스 웨인이 미혹되는 대상은 희망이 아니다. 희망이 거짓이란 건 잘 알고 있다. 중년이 말하는 희망은 가식이다. 믿는 척할 뿐이다. 그렇게 상대가 희망을 믿게 만든다. 그렇게 세상을 이용한다. 브루스 웨인은 세상을 이용하느니 등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성에 스스로를 가둔다. 브루스 웨인은 불혹의 화신이 된다.
브루스 웨인이 40대의 진정한 지혜를 깨닫는 건 지하 감옥에서다. 허리가 부러진 브루스 웨인에게 숙적 베인은 이렇게 말한다.
“여긴 집이야. 내가 절망의 진실을 깨우친 곳이지. 이곳이 지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아나? 희망 때문이야. 아주 쉽고 아주 간단하지만 결코 얻을 수 없지. 진짜 절망은 거짓 희망을 동반하는 법이지.”
브루스 웨인은 지하 감옥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가장 절망적인 방법으로 죽음과 마주하자 탈출구가 열린다. 40대의 브루스 웨인은 그때 깨닫는다. 세상은 탈출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탈출할 수 있는 지하 감옥과 같다.
중년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세상과 맞서야 하는 나이다. 세상을 믿지 않음으로써 세상을 믿어 봐야 하는 나이다. 사랑을 의심함으로써 사랑을 발견해내야 하는 나이다. 브루스 웨인은 절망과 죽음에 미혹된다.
세상을 믿을 수 없다면 세상을 끝까지 의심해 보기로 한다. 사랑 없이 홀로 살아가느니 외롭게 죽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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