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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재구성

한국인이라는, 이 신나고 괴로운 신분

한빛비즈

집필서

판매중

  • 저자 : 조선희
  • 출간 : 2021-07-01
  • 페이지 : 560 쪽
  • ISBN : 9791157845187
  • 물류코드 :3343
  • 초급 초중급 중급 중고급 고급
5점 (1명)
좋아요 : 1

틀린 정보와 상식, 끊어져 버린 흐름...

흐트러진 모자이크를 맞추다  

 

한국 사회는 사회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냉철하게 이해해야 할 정치사회적 문제조차도 감정적으로 변질되어 분노로 양극화되어 가는 중이다. 각종 미디어와 SNS에서 쏟아내는 단절되고 맥락 없는 정보들은 대중에게 혼란과 오해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만큼 성숙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갈등을 포인트로 잡았다. 쟁점도 많고 갈등도 많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 ‘팩트’를 체크하고 배경을 짚어줌으로써, 문제를 좀 더 넓은 시야로 들여다보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 

 

 

팩트와 역사적 맥락을 정확히 알면

사회의 상식이 세워진다

 

많은 이들이 역사적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 넘쳐나는 정보에 휘둘려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 책에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들어 있다. 상식은 사실을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넓고 깊게, 그리고 정확히 아는 데서 상식의 중간지대가 만들어진다. 상식의 중간지대가 넓어지면 갈등 해결의 내공도 늘어난다. 

사회갈등을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현 이슈들에서 한 발 빠져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는 독자들이 생각의 힘을 발동해 직접 판단하게 하기 위함이다. 한국사회가 알아야 할 지식을 제공하되,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해 지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회를 읽는 능력, 

미디어 리터러시를 키운다 

 

대중은 뉴스와 SNS에서 엄청난 정보를 얻고 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정확한 정보가 종합적으로 있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걸러지지 않은 정보들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이 책은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미디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구조를 보게 해준다. 

이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순서대로 읽으면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장점이 있고, 관심 가는 주제부터 읽으면 자신을 혼란과 갈등에 빠트리는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독자들은 각 주제에 대해 ‘팩트’를 정리하면서 정보와 지식을 모자이크하는 재미를 즐길 수 있다. 

조선희 저자

조선희

1960년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여고와 고려대학교를 다녔다. 1982년 연합통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으며 1995년 영화주간지 <씨네21> 창간부터 5년간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0년 기자 일을 접고 에세이⟪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 단편집 ⟪햇빛 찬란한 나날⟫을 냈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2006-2009)과 서울문화재단 대표(2012-2016)로 일했다. 한국 고전영화에 관한 책 ⟪클래식중독⟫을 냈고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여성혁명가들 이야기인 장편소설⟪세 여자⟫로 허균문학작가상 등 문학상들을 받았다. 2019년 10월에서 2020년 4월까지 베를린자유대학의 방문학자로 베를린에 체류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를 위한 독법 가이드

프롤로그 2020 전 세계 코로나 일제고사

1장 불평등 퍼즐

2장 미디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3장 민주주의 멀미

4장 독일의 경우

5장 이념 트라우마

6장 일본 딜레마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책을 마치며

▶ 책 속으로

 

코로나 확산 초기, 한국이 중국 다음의 감염국가가 됐을 때 한국사회는 히스테리컬해졌다. 바이러스의 기습에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들의 아드레날린이 출구를 찾고 있을 때 미디어들이 혐오와 증오의 헤드라인으로 치고 나갔고 그 대상이 중국이 되기도 하고 정부가 되기도 하고 신천지가 되기도 했다. (…)

미국과 유럽에 비해 백신 접종이 늦어지자 미디어들이 다시 히스테리컬해졌다. (…)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한국사회는 인구밀도의 물리적 조밀함보다도 미디어 포화상태의 심리적 조밀함이 더 문제가 되었다. 또한 자부심과 열등감 사이에서 널뛰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은 지난 100년 사회발전의 속도만큼 변화무쌍하고, 바깥의 힘에 휘둘린 역사만큼 남들의 평가에 예민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가기 쉬운, ‘취급주의’ (fragile) 물품과 같다. (…) 정치와 미디어의 이다음은 무엇인가. 또 다른 종류의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대중의 불안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쪽보다는 좀 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주는 정치와 미디어, 그 행복한 미래로 가는 길은 어느 쪽일까.   

- 프롤로그, 16~19쪽

 

지난 시대를 보내는 ‘매너’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숭배와 저주로 양극화돼있는데 그것은 한국사회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갈등의 소재로 남을 뿐이다. 공산주의 중국의 초기 마오쩌둥 시대가 막을 내린 다음 마오이즘을 뒤집으면서 실용주의 현대화노선을 선언한 덩샤오핑은 그 자신 박해당하고 숙청당한 악연이 있었지만 마오에 대한 평가를 ‘공칠과삼(功七過三, 공이 7 과가 3)’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마오쩌둥 시대와 확실히 선을 그으면서도 마오쩌둥 격하운동이 일으킬 혼란을 예방했던 것이다. 박정희의 후임자들 중에 진보든 보수든 어떤 대통령이 “그의 공이 70%, 과가 30%”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가 마침내 한 논란의 시대를 졸업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 3장 민주주의 멀미 : 지난 시대를 어떻게 졸업할 것인가, 박정희라는 이슈, 196쪽

 

군부가 무력화된 시대에 검찰이 정치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검찰에 대한 견제장치를 미처 마련하지 못한 ‘민주도상국’들에서 가끔 있는 일이다. 이러한 과도기, 검찰패권의 시절에 검찰 책임자가 정치인 이상으로 주목받기도 하지만, 정쟁에서 부각된 ‘이슈맨’이 대통령 후보로 떠올려지는 것은 정치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정치 양극화가 빚어낸 기이한 풍경이다. 이야말로 민주주의 위기의 한 징후다.

- 3장 민주주의 멀미 : 정치 양극화가 가져오는 나쁜 것들, 180쪽

 

민주주의는 폭력을 금지시키는 한편 표현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렇게 해서 신체적인 폭력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언어폭력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사회가 되었다. ‘공손한 폭력 사회’를 벗어나 ‘무례한 비폭력 사회’로 넘어온 것이다. 개인에게 잠재한 공격성은 근육에서 입으로 전이됐다. 정치논평이 국민오락이 되었다. 

- 3장 민주주의 멀미 : 권력에 대한 애증, 한국인의 정치감정, 153쪽

 

투사의 시대는 갔다. 스크럼 짜고 하나의 적을 향해 일사분란하게 돌격하던 시대는 지났다. 과거엔 대화나 타협이 비겁과 비굴의 딱지였지만 이제 그것은 미덕이고 실력이다. 

대화와 타협은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이 한국 사회가 민주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느냐, 갈등해결의 내공을 가진 사회로 진화하느냐의 관건이다. 

- 3장 민주주의 멀미 : 상식을 공유하는 중간지대, 218쪽

 

민주주의 사회의 유일한 규범은 ‘하나의 규범은 없다’는 것이다. 어느 집단 어느 개인에게나 통용되는, 5년 전 10년 전과 똑같은 그런 유일 불변의 규범은 없다. 내가 틀릴 수 있고 네가 옳은 점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상식의 중간지대가 생겨난다.  중간지대는 큰 배의 평형수처럼 사회가 덜 흔들리도록, 침몰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준다. 

- 3장 민주주의 멀미 : 상식을 공유하는 중간지대, 217쪽

 

국영/공영방송사들이 정권교체에 따라 조직이 폭격 맞다시피 하고 뉴스보도와 프로그램들이 정치적 편향의 극과 극을 왕복하는 악순환은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핑퐁이야말로 멀미나는 일이다. 공중파방송이 대통령선거의 전리품이라면 그 사회는 미디어의 막장이 될 수밖에 없다. (…)

식민지-전쟁-군부독재로 이어지는 100년, 정치 리더십의 부재와 실책과 남용으로 개인이 학대당하는 역사를 지나온 우리 대중은 이제 치유의 정치를 필요로 한다. 정치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가치의 배분’이다. 힐링에 필요한 것은 배분의 전쟁이 아니라 배분의 예술이다. 

- 3장 민주주의 멀미 : 상식을 공유하는 중간지대, 220쪽

 

그들이 노년이 됐을 때 모든 것이 당황스러웠다. ‘과업지향적’인 그들에게 더 이상 ‘과업’이 주어지지 않고, 다가올 미래엔 죽음이 기다릴 뿐이고, 과녁이 있던 자리는 공터가 되었다.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 빈곤만이 남았다면, 자식들을 위해 일했는데 자식들이 곁에 없다면, 여생을 빨리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일생의 경쟁 트랙에서 내려왔을 때의 정신적 공황을 동네 경로당에서 다스릴 수 없는 어떤 사람들은 할 일과 동료들을 찾아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베이비붐세대, 483~484쪽

 

강의 도중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를 체포한 건 야비한 ‘처벌 시위’였고 공권력의 ‘힘자랑’이었다. 문인 출판인들이 마광수와 출판사 대표의 구속에 항의했던 건 그들이 모두 ⟪즐거운 사라⟫를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 7장 민주주의 멀미 : 한국인은 누구인가, 539쪽

 

그러니까 보호 정책이 아니라 자유경쟁이 한국영화를 키운 것이다. 보호막이 날아가고 전쟁판이 됐을 때 한국의 영화인들은 놀라운 전투력으로 자력갱생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인데, 그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개방의 쓰나미에 영화산업이 씻겨 내려간 것이 대개의 나라들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아시아 3개국 한국 중국 일본 중에서 한국의 시장점유율 50%는 특별하다.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한국인, 어떤 탁월함, 517쪽

 

자기가 속한 사회를 답답해하는 건 청년기의 특징이고 특권이기도 하다. 유럽에선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경제가 침체되면서 청년들이 프랑스나 독일로 가는데 독일 청년들은 독일에 희망이 없다고 스위스나 미국으로 빠져 나간다. 독일 청년들은 노동시간이 더 짧고 복지는 더 좋은 스칸디나비아와 자신을 비교한다. ‘쟤들은 저렇게 대충 일하고 사는데 우린 뭐야.’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밀레니얼세대, 499쪽

 

A씨는 자신의 내면에 살고있는 ‘노예감독관’이 딸에게는 없다는 걸 확인했다. A씨 세대 대부분은 김누리교수가 말한 ‘노예감독관’, 스스로의 생산성을 채근하는 ‘슈퍼에고’와 더불어 살아가는데 자식 세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

자기 일처리를 분명히 하고 업무가 꼬이지만 않는다면 서로를 성가시게 만들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다고 심야에 불러내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이 개인주의의 비용이다. 개인의 영역과 자유를 사수하겠다면 사적인 위로나 배려도 기대하면 안 된다. 직장이 너무 썰렁한 것도 싫지만 너무 동화되기도 싫은 것이 그들 세대의 딜레마다.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밀레니얼세대, 504~505쪽

 

글로벌 비즈니스가 그들에게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국가 브랜드를 등에 업지 않고 오직 자력으로 언어의 장벽, 인종의 장벽과 싸워야 했다. 세계시장의 마이너리티로 출발해 메이저가 된 것이다.

 가령, 삼성은 과거 50년 포스트 식민 시대 경제전쟁에서 승리해 식민지와 분단으로 상처 입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달래준다. 다만 삼성이 보여준 탈법, 초법적 태도들은 우리를 딜레마에 빠뜨린다. 우리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 땄으나 도핑 테스트에 걸렸으니 박수를 칠 것인가 말 것인가.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사회의 품격, 사회적 웰빙에 관하여, 523~524쪽

 

‘한국적’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전쟁도 유교도 아닌 세련되고 발랄하고 창의적인 어떤 매력을 상기시키게 되었다. BTS 신곡이나 봉준호 영화의 이미지가 한국산 휴대폰, 한국산 TV, 한국산 자동차의 ‘웰메이드’ 인증마크를 한층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517쪽

 

<기생충>이라는 한국영화에 세계가 환호한다는 것, 그런데 그 작품이 한국 사회 계급갈등의 깊고 어두운 골을 비춘다는 것, 통쾌하면서도 떨떠름한 이 기분은 한국인이라는 이 신나고도 괴로운 신분이 제공하는 아이러니다.    

- 1장 불평등 퍼즐 : 다시 <기생충>, 82쪽

 

유럽 베이비붐세대가 1945년 이후라면 우리는 1953년 이후라 10년 낙차를 두고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다. 한국에서 베이비붐세대가 대학생이 됐을 때 학생운동과 페미니즘이 부상했고, 그들이 학부모가 되었을 때 대안학교나 공동육아가 붐을 이뤘다. 그들이 노년이 되면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국민연금 잔고가 이슈가 되고 노인 자살이 늘었다. 노년의 베이비붐 여성들은 ‘황혼이혼’의 유행을 만들었다.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베이비붐세대, 481쪽

 

자녀를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자 했던 전업주부거나 남편 도움도 없이 자녀양육과 가사노동과 직장생활의 일인삼역을 했던 워킹맘이거나 간에, 50~60대에 접어들어 가족봉사의 책임을 다했다 싶어지면, 지쳤거나 화가 나서 남편에게 ‘황혼이혼’을 제안한다. 집단주의에서 출발해 개인주의에 도착한 과도기 인생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베이비붐세대, 482쪽

 

자살률과 관련해 흔히 잘못 알려진 것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 90년대 이후 풍요시대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1980년대 인구 10만명당 10명 미만에서 점점 늘어나 2003년에 OECD 1위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1983년 통계청이 생겨나면서 자살률이 처음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경찰 통계에 따르면 자살이 늘어난 건 전쟁이 끝난 1950년대 중반부터였고 1960~70년대 개발시대의 자살률이 이미 2000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유명한 ’자살왕국‘인 헝가리가 1961년 24.9명으로 세계 최고를 기록했을 때 한국은 24.4로 거의 헝가리 수준이었다. 

따라서 지금 한국의 자살 신드롬은 부유한 나라들이 앓는 ‘선진국 병’이 아니라 한국의 특별히 터프했던 근대화 과정, 경쟁과 과로의 경제성장, 급격한 도시화 물결 속에서 개인들이 겪은 스트레스로 이해해야 한다. 속칭 ‘자살공화국’은 한국경제의 이륙과 함께 시작했다. 지표면으로부터 급히 상공으로 치솟을 때 엔진이 풀가동되고 기체가 흔들리면서 겪게 되는 비행기 멀미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자살 신드롬은 집단적인 ‘근대화 멀미’인 셈이다.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한국인의 입지전, 자살공화국에 대한 해명, 474쪽

 

제국이 아니라 식민지였던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는 모든 유럽의 수도가 자랑하는 웅장한 왕궁이 없고 이집트 미라를 가져다 놓은 박물관도 없다. 헬싱키에서 외국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은 왕궁이 아니라 도서관 ’오디‘다.

인구가 적으니 영화산업이 시들해서 아키 카우리스마키 외에 알만한 감독이 없고 자국 영화 메뉴가 빈약한 것이 좀 심심해 보이지만, 핀란드 사회의 평화는 우리의 밴치마킹 대상이 될 만하다. 무엇보다 도시 속의 천국 ‘오디’는 훔쳐오고 싶은 공간이다. 

- 7장 한국인은 누구인가 : P.S. 핀란드 이야기, 553쪽

정치와 미디어를 중심으로 이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팩트 체크 중심으로 엮은 글로 제목 그대로 우리가 흔히 당연하다고 알고 있는 상식을 재구성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유명 기자 출신의 저자 답게 다양한 각도에서 팩트들을 살펴보며 선입견을 걷어내고 사회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하면, 유명 작가 출신답게 전달력이 일품이다.

책의 내용은 대표적으로 양극화, 미디어, 민주주위, 좌우이념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마치 신문 기사를 읽듯이 자연스럽게 정보를 취할 수 있으며 이마저도 작가 특유의 전달력이 가미되어 술술 읽히는 편이다.

수십 년간의 기자 생활 내공 덕분인지 팩트를 어느 정도 깊이로 전달해야 독자가 무리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지 그 경계선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으며 여느 연구자들의 보고서 못지 않게 깊이있는 연구 결과 혹은 실험도 담겨있고 독일, 일본을 대표로 비교하며 한국과 한국인의 현주소, 그리고 향후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해법을 풀어나가는 과정 또한 인상적이었다.

책 서문의 독법에서 저자의 집필 관점을 엿볼 수 있는데 갈등과 사상이 담긴 민감한 주제를 담고 있는 만큼 담담하게 사실 위주의 객관적 정보 전달 위주의 글이 담겨있다. 물론 일부 저자의 사적 견해가 담긴 대목도 있지만 객관적 정보 전달이라는 기조를 상시 유지하고 있어 저자의 견해는 참여자의 일부 의견으로 비춰지고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대세 주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책의 구성이 정말 참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솔직함은 단순히 객관적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는다. 1장 불평등 퍼즐 중 5절 “내가 참여한 아파트게임”을 보면 그렇다. 적지 않은 인생을 살아온 저자가 아파트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봤는지 긴 세월 한국의 아파트는 어떻게 가격이 상승했는지 엿볼 수 있다. 심지어 각 시기별로 얼마만큼의 부동산 이익을 남겼는지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공개하며 허심탄회하게 저술하고 있어 더욱 놀랐다. 이런 담담한 솔직함은 이 책이 가지는 커다란 매력이다.

보통 리뷰를 쓸 때는 어느 정도 간추린 내용을 요약하는 편인데 이 책만큼은 예외로 두려 한다. 560p의 분량에 육박하는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 쉽게 간추리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정보 전달보다는 스스로의 선입견을 걷어내고 올바른 사상의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도록 깊은 고민과 함께 우려 읽는 책이기 때문이다.

대신 책을 읽다보면 몇가지 놀라울 정도로 눈에 띄는 대목들이 있어 이를 간단히 소개해볼까 한다.

양극화다 불평등이다 말은 많지만 수치적 분석 자료만 주위에 널려있는 바 이를 현실적으로 느낄만한 자료는 많지 않다. 본 도서의 불평등 파트에는 동국대 사회학과 조은 교수의 연구 결과인 “재개발사업이 지역주민에 미친 영향”이 등장한다. 재개발 지역의 주민을 포함 자손 4대에 걸친 기록이 담겨있어 질적으로 불평등을 느껴볼 수 있는 다소 신선한 구성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양측간의 갈등 또한 중국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공칠과삼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안목도 돋보인다. 진보 진영에서 말과 행동이 다른 강남에 살며 집값이 내려간다고 떠드는 좌파나 국민연금을 위험에 빠뜨린 박근혜 대통령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노년층이 압도적인 태극기 부대 보수에 대한 일침도 통쾌하다.

"’그 사람이 사는 법’을 보면서 경험의 확장이 일어날 때, 배울 것이 많은 인생의 선생님들을 만날 때, 거기에 ‘미디어 유토피아’가 있다.” 라고 언급한 구절은 내공이 중후한 기자의 정수를 맞딱드린 대목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이 기조를 철저히 유지하고 있고 덕분에 읽는 내내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수십 년 기자 생활의 내공 안에 정리된 객관적 사실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팩트들을 통해 스스로 깊은 고민에 빠지는 여행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참고로 이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내려놓기 어렵다. 다루는 주제가 주는 선입견과 달리 묘하게 정신이 힐링되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을 보면 책의 제목과 내용이 너무 잘 어울린다.

재미있게 정신을 힐링하고 싶다면, 다양한 갈등과 선입견 에서 벗어나 한 차원 뛰어난 메타 지도를 그려보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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