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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라이프

열린 출판 : 디지털 콘텐츠는 판본 개념이 없다.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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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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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14,103

제공 : 한빛 네트워크
저자 : Mac Slocum
역자 : 정향, 8년차 영어 교재 편집자 @niangii
원문 : Open-ended publishing

모든 변화는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 변화를 좋아한다.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 자체만으로, 새로운 모드에 적응할 수 있는 잠재력이 생긴다.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엄청난 노력과 집념이 필요하지만, 세상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겠노라 결심하는 것 자체가 촉매가 된다.

나는 내 직장동료 러셀 존스가 최근 회사 이메일로 이야기했던 내용을 보고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거에 "출판"이란 항상 "인쇄"라는 일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이제 "책"이란 독자들이 내려 받을 수 있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말한다. 게다가 자동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다면 그것조차 100% 맞는 말은 아니게 된다.

예를 들자면,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책을 만들 수도 있고, 독자의 목소리로만 구성된 책이라든가, 링크만 나열된 책이라든가, 독자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책, 시간이 가면서 성장하는 책은 물론, 메타데이터를 스스로 수집하는 북 리더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곧 애플리케이션인 책, 인터랙티브 투어인 책. 사람들이 책을 읽음에 따라 결말(또는 이야기 전체)이 바뀌어가는 책 등. 재판(再版)은 없다. 판본 개념은 있을 수 있지만, 그 개념도 대개는 독자에게 의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게 변했다. 한계는 사라졌다.

[주: 이 내용은 러셀의 허락 하에 게재하였다.]
러셀의 글을 읽고 나는, 정신적인 "변화의 필터"가 콘텐츠 산업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또한 내가 몇 년 동안 가지고 놀던 질문 몇 개를 공유하고 싶어졌다. 그중에서도:

모든 콘텐츠가 연속체라면 어떻게 될까? 끝이라는 게 없다면? 최종판이라는 게 없어진다면?

그렇게 되면 우리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수필, 책, 잡지, 신문, 영화, 게임… 장르를 불문하고 우리는 일찍부터 판본을 만들도록 교육 받았다.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콘텐츠는 판본 기반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움직이고, 흐르고, 쪼개지고, 섞이고, 재결합된다.

위키피디어 항목의 개정 이력만 봐도 알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는 유동적이다.

묘하고도 흥미로운 것은, 콘텐츠 생산자(심지어 디지털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조차) 중에 판본 개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나 역시 이 함정에 늘 빠지곤 해서, 하나의 "글꼭지", 하나의 "기사"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때가 너무 많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내 창의력의 산물이, 일정한 그릇에 담은 일정량의 콘텐츠로 제한되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각은 여기까지다. 보다시피, 열린 출판에 대한 내 생각은 이제 막 싹 트는 단계이다. 이런 프로세스가 장기적으로 유의미한지 확신도 없다. 비즈니스 모델로 적합한지도 전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출판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말해보겠다.

모든 것은 공개할 수 있다

열린 모델 하에서는, 메모와 발췌문, 링크, 초안을 모두 온라인에 발행할 수 있다. 이 콘텐츠를 보고자 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너무 정리가 안 돼 있어서 공개돼 있다 해도 비공개인 거나 마찬가지랄까), 내 경험상, 자료를 공개된 공간에 두는 것 자체만으로도 중대한 변화가 생겨난다.

콘텐츠 생산자는 콘텐츠를 공개하면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Tumblr 계정에 온갖 인용문과 발췌문, 덜 여문 아이디어를 비워내는 것도 그래서이다. Tumblr는 나한테는 온갖 잡동사니를 담아두는 통이다. 내가 쓰는 포스트와 내가 묻는 인터뷰 질문에 바탕이 되는 모든 것이 거기 있다. 내가 그걸 거기 올리는 것은 모두에게 가치 있는 자료라서가 아니라(가치가 없는 건 나도 안다), 콘텐츠를 공개한 이상 끝을 보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런 생각 조각들을 비공개 구글 문서에 모았었다. 의도와는 달리 그 중에는 끝을 본 것이 없다. 아무도 다시 보지 않을 문서에 갇혀 그저 거기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같은 내용도 공개적으로 발행하면, 마치 미래에 완성될 콘텐츠의 알파 버전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모든 것은 공개할 "수 있다"라고 한 것에 주목하자. 모든 것을 공개해야만 한다는 게 아니다. 어떤 아이디어나 발견에 경쟁우위 요소가 있다면 숨기고 싶을지도 모른다. 숨겨도 상관은 없지만, 나는 거의 모든 것을 공개된 공간에 던져두어도 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어차피 아이디어가 아무리 대단해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지 않은가? (참고: 핵 발사 암호, 비전의 약초와 양념, 회사의 대외비 자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그냥 분명히 하려고 언급해 둔다.)

언제든지 앞뒤로 왔다 갔다 하자

우리는 "끝"을 감지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글의 마지막 문단을 읽고 곡의 마지막 박자를 들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끝이 가깝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열린 출판이라는 건 이상해 보인다. 아니, 잘못돼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그런 관념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콘텐츠 생산자라면 늘 일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가능하다. 마지막 손질을 해서 결과물의 응집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조차 완전히 끝이 난 것은 아니다. 관련된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다시 엔진에 시동을 걸지 말라는 법 있는가? 또는 다른 사람이 내 공을 이어받아 뛰겠다면, 그러지 말라는 법 있는가? 이것은 시리즈 "리부트"(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느낌이 강한 후속작-옮긴이 주)가 성행하는 영화 산업에서는 이미 흔한 일이다. (게다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와 JJ 에이브러햄스의 "스타 트렉"을 보면 리부트란 참 좋은 것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큰 교훈은, 콘텐츠가 열려 있으면 창조자들이 마음껏 앞뒤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시작하자

세상에는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사람이 참 많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글을 쓰고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을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콘텐츠 창조자는 자연히 별로 없다. 우리 중에는 창조를 할 수밖에 없는 축복(저주인가?)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야기할 내용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나는 위대한 콘텐츠가 경계성 정신병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작가는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맞는 말이지만, 작가가 아니더라도 흥미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가 생겨날 것이다.

1. 무지막지하게 많은, 끔찍한 콘텐츠

2. 비율은 낮지만 중요성은 매우 큰, 아름다운 콘텐츠

유튜브가 살아있는 증거다. 유튜브의 콘텐츠는 아주아주 질이 낮다. 그러나, 마구 흔들리는 홈 비디오와 보고 있자면 민망할 지경인 "코미디" 가운데에서도, 진실한 목소리와 진정한 재능을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는 기술을 통해 콘텐츠 창조 및 배포의 장벽을 낮춘 것이다. 나는 장벽을 낮추는 데 지나지 않고 깨부수는 자세를 갖자고 말하려는 것이다.

질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려면 여러 번 수정을 거쳐야 한다는 관념을 고집하지 말고, 그냥 일단 시작해보자. 일단 발행해보자. 일단 써보자. 일단 공개하자. 내 생각이 그저 "생각"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물체"로 구체화되게 하자. 이런 콘텐츠는 열려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수정하거나 고쳐 쓸 수 있고, 심지어는 취지 자체를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 제일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NaNoWriMo(National Novel Writing Month: 매년 11월 한 달 동안 회원들이 자유롭게 참여해 5만 단어짜리 소설을 쓰는 프로젝트-옮긴이 주)가 대단한 프로젝트인 것이다.)

기대 수준과 플랫폼

"그럼 모든 콘텐츠가 의식의 흐름에 따른 헛소리가 돼야 된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나는 편집자다. 나는 명확한 걸 좋아하고, 명확하기 위해서는 구조와 수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예를 들어 이 글도 한 번 고쳐 쓴 다음에 또 고쳐 쓴 것이다.) 나는 또 품질이 경쟁 우위 요소라고 생각한다. 질 나쁜 자료가 너무 많기 때문에, 질 좋은 자료 생산을 위해 노력하면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열린 출판에서는, 기대 수준과 플랫폼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내가 기대 수준이 비교적 낮은 (아니면 아예 없는) Tumblr에 잡생각을 모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글을 절대 Radar에 올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Tumblr에 모인 아이디어와 링크를 취합해서 Radar에 올릴 글의 토대로 사용한다.

그림1

그러나 여기는 뭔가 빠져 있다. Tumblr에서 아이디어가 시작되고 Radar에서는 아이디어가 보다 정제된 형태로 나타난다면, 그와 관련하여 발전된 아이디어가 갑자기 떠오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Radar 글에 추가해야 하나? 새 글을 올려야 하나? 아니면 이런 "감독판" 버전은 또 다른 플랫폼에 올려야 하나?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관할 곳이 없다고 해서 새로운 생각 줄기를 버린다는 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에너지가 있는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렴하고 사용하기 쉬운 온갖 플랫폼을 모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계속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 면에서 이 글은 메타 글이라 하겠다. 몇 년 동안 디지털 콘텐츠 일을 하고 그에 대해 고민하면서 모은 생각 오라기들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생각 오라기 하나하나는 원래 Tumblr, 비슷한 주제를 다룬 블로그 글, 이메일, 트윗 등 여러 플랫폼에 발행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 생각 오라기들 중 일부를 (좋은지 나쁜지 몰라도) 이곳 Radar에서 한데 뭉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며, 어떤 형태로든 계속 발전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일리가 있긴 할까? 열린 출판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자유로운 코멘트와 발전된 논의, 반론과 반박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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